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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zareality

Spinoza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개념 정리: 현실을 이해하는 두 길

현실에 관한 실천적 혼동으로부터 발생하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관점이 있다. 1) 삶 속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의 양태들을 필연적 법칙으로 이해하는 방향.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당위로 간주하면서, 모든 현실적 실천의 문제를 우리가 파악하는 법칙에 귀속시키며, 우리의 행위능력을 준법의 한계 위에 위치시키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와 같은 윤리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인식과 사유의 대상으로 파악하게 하기보다는, 우리의 의식이 포착한 현상을 그 자체 원인으로서 혹은 그 원인에 고유한 결과로서 파악하게 함으로써, 절대적인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상정한다. 자연 안의 다양한 양태들과 이들을 무리 짓는 이러저러한 법칙들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이 법칙들은 우리에게 부여된 도덕적 명령들로 돌변한다. 자연의 법칙과 질서들이 도덕적 강령들로 변할 때, 우리의 인식과 사유의 능력들은 영원한 진리에 의존하게 되고, 초월적 신의 이미지를 자신 안에 강렬하게 각인시키면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한 모든 능력들에 우선하는 하나의 모델을 세우게 된다. 우리는 특정한 하나의 사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을 제한하고 포기함으로써, 그 사태들과 조건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암묵적인 복종의 강령들과 타협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 때에 우리는 현실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그리고 우리의 신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식이 제한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때에 우리는 인식과 사유의 질서가 아닌, 무지한 의식의 법칙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학은 성서에서 주어진 것들이 인식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인식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심지어는 이성에 의해 옮겨지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기에서 도덕적이고 창조적이며 초월적인 신이라는 가정이 나온다. . . . 여기에는 존재론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혼동이 숨어있다. 이해해야 할 것을 명령과 혼동하고 인식을 복종과 혼동하며 존재(l'Etre)를 당위(Fiat)와 혼동하는 오랜 오류의 역사가 있다. 법칙은 언제나 선악이라는 가치의 대립을 결정하는 초월적 심급이지만, 인식은 언제나 좋음-나쁨이라는 존재 양태들의 질적 차이를 결정하는 내재적 능력이다"(들뢰즈 41-42). 따라서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 현실적 관계들을 우리의 신체가 할 수 있는 능력들에 따라 조직하고 구성하는 방향.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통해 말하는 신체의 능력이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촉발(변용)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 안의 모든 개체들은 새롭게 분류되어야 한다. 그에 따르면, 동물들, 식물들, . . . 이러 저러한 다양한 사물들은 형태론적이고 기능적인 기관과 외양들에 따라 군집을 이루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이 존재들이 서로를 결합하고 자신들의 군집을 형성하는 유일한 방식은 "유(類)나 종(種)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촉발 능력에 의해서, 즉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촉발들에 의해서, 그것들이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 내에서 반응하게 되는 자극들에 의해서"이다(들뢰즈 45). 신체의 능력을 표현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그 능력들을 제한하고 능력에 앞서 우연적으로 결정된 신체의 기관과 기능에 의해 존재가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 안에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응 능력, 동일한 기관과 기능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다양한 능력, 현실화된 것으로서 기관과 이 기관에 상응하는 특정한 기능보다도 어쩌면 더 심오한 심급에서 발생했던, 기관이 미 결정된 신체에서조차 잠재하는 능력, 바로 공명하는 능력에 따라 서로를 결합하며 집단을 형성한다. 촉발과 변용은 공명능력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를 역능(puissance)이라 부른다. 스피노자의 촉발이론 전체는 바로 우리가 어떻게 이 역능을 최대화하고, 어떻게 이 역능을 현실화할 수 있는 관념을 생산하고, 어떻게 이 역능 안에서 자신과 신 그리고 자연의 모든 사물들과 필연적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촉발이론에서 능동 촉발과 수동 촉발, 그리고 수동 촉발에서 기쁜 수동 촉발과 슬픈 수동 촉발, 그리고 기쁜 능동 촉발에 관한 복잡한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윤리학』3부(Of the Origin and Nature of the Affects)를 읽어보자!). 확실히 이 이론은 존재의 내재적 양태에 관한 위상학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법칙들에 조응하는 우리 자신들의 덕목을 말하지도 않으며, 우리 자신의 덕목과 행위 능력들을 법칙들에 따라 설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이론 안에서 법칙들은 오로지 우리 자신 안에 본성적인 능력들과 이 능력들간의 관계, 그리고 다른 신체의 능력들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의 모든 길은 내재성(immanence)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내재성은 무의식 그 자체이며, 무의식의 정복이다. 윤리학적 기쁨은 사변적 긍정(affirmation)의 상응 개념이다"(들뢰즈 47).

인용문헌
들뢰즈, 질. 『스피노자의 철학』. 박기순 옮김. 민음사. 2001.

2006/10/26 22:05 2006/10/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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