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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eperception순수지각(pure perception)에 관한 노트1. 지각이나 감각보다는 진리와 존재의 인식기능으로서 사유를 중시했던 플라톤 . . . 감관지각을 저차원적인 것으로 파악 . . . 현대에와서 경험과 실증성이 강조되어 지각이 중요해짐, 특히 직접적 경험 내지 직관적 인식을 강조하는 현상학; 의식의 본성인 지향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감관지각, 특히 "지각은 인간의 전 존재가 발현하는 현상"이며, "물리화학적 메커니즘과, 이 세계에 대한 광학에 뿌리를 두고 동물의 왕국을 넘어서는 개방된 시각을 가지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실재에 대한 무한한 이해를 향해 고양되는 현상"으로 인식 2. 지각에 관한 두 길; 전통적인 존재론적 사고방식 / 현대의 현상학적 방식 3. 근대과학의 발달과 성과 => 감관지각의 발생을 설명하는 이론들 출현 => 이 설명을 기초로 감관지각의 인식론적 가치까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표상론. 표상론: 심리학자나 과학자들이 소박한 실재론에 기초를 두고 감관지각의 발생을 설명하려는데서 출현 => 지각대상으로부터 지각자(여기서 지각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인간이란 총체적 효과에 불과하다)까지의 인과적 과정을, (대상 => 반사된 자극광선 => 망막 => 시신경자극 => 대뇌피질중의 시각중추 => 표상)의 과정을 따른다. 이때 실재론적 철학은 지각대상과 표상의 관계를 실재와 현상의 관계로 설명, 데카르트와 같은 심신이원론자는 지각을 대상에 촉발된 심적 표상으로 설명하는 것이 다를 뿐, 우리가 외적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사실상 대상 자체가 아닌, 우리 두뇌 안에서 대상이 현시된 현상이나 부현상(e'phiphe'nomenon), 혹은 심적표상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대상 자체를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매개된 대상으로서의 표상(representative image)을 지각할 뿐이다. <<현상이란 의식에 현현된 표상. 현상학이란 표상된 이미지의 연구>> 4. 표상론의 장점: (1) 지각발생에 대해 인과적이고 분석적 인식을 제공, 생리적 사건인 감관, 신경, 두뇌의 충격이나 손상의 지각작용과의 관계가 쉽게 설명된다. (2) 감관지각의 인식기능으로서의 불충분함, 상대론적 인식가치만을 지닌 지각의 착각이나 환상, 꿈 등의 작용이 설명된다. (3) 지각작용에서 시간의 지체현상이 쉽게 설명된다, 특히 지각대상과 지각자 사이의 거리가 이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5. 표상론의 단점: 버클리가 지적한 이래 수많은 난점들; 특히 인식론적인 가치를 의심케하고, 심신관계에 대한 해명에 문제점 보임. (1) 표상론은 대상=>감관=>두뇌의 인과계열을 설명하지만, 이 문제는 지워버리고 표상된 현상만을 다루면서, 이 표상된 현상이나 인상들이 물질세계 전체의 재구성에 충분한 것처럼 생각. 이러한 비연장적인 감각에서 정감(affe'ction)의 상태, 결국 순수한 정신적 상태에 도달하여 이러한 비연장적인 심적상태들로 외부지각을 구성하고 설명하려함 => 관념론자들은 물질세계에서 주관적이고 비연장적인 상태들의 종합만을 보며, 실재론자들은 이 종합뒤에 독립된 실재가 있음을 덧붙임 => 결국 표상론은 논리적 자가당착을 범하거나, 버클리처럼 "esse est percipi"라는 주관적 관념론에 빠진다 => 표상론은 외적실재에 대해 그 자체를 알 수 없게 한다. (2) 더 나아가 지각내용이나 의식을 두뇌 밖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거나 신체 안에 가두어 놓음으로해서 논리적인 모순을 범하며, 의식 혹은 마음의 존재를 신체와 같이 외재성이나 내재성으로 표현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정신을 마치 연장성을 지닌 물질과 같은 것으로 간주. (3) 정신 현상으로서 지각이나 기억, 꿈이나 상상의 차이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의문이다. 왜냐면 이러한 정신적 기능은 모두 소위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기능으로서, 이들은 내용상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한 정신적 기능이므로 어떤 현실적 징표에 의해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흄과 같이 이들의 차이를 분명성의 정도에 따라 구분하게 된다. 5. 현실적인 지각의 두 의미 (1) 현실적 지각 = 물질의 흐름이며 진동과 본성적으로 다르지 않은 순수지각 + 기억에 의한 여러 지각상
(2) 물질의 흐름은 의식되어있지 않고, 단지 물질의 흐름이라고 추정된 운동실재가, 정신이 갖는 지속(기억)의 긴장성에 의해 압축고정되어, 우리의 직관에 직접주어진 질을 형성하고, 이 질을 통해 신체적 작용이 반영된 이미지를 형성하여, 이 최초의 질적 이미지가 순수지각으로 불리어야하며, 이 최초의 지각 이미지에 과거의 지각 이미지들이 기억작용에 의해 덧붙혀져서 물체(chose)에 대한 표상을 구성하는 것이 된다. . . . 그러나 이때 순수지각은 (존재의 물적 기반인 신체를 반영한다 해도) 주관적인 것이지 결코 객관적인 물자체는 아니다 =>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신체 밖에서 형성되는 것이 설명되지만, 그 지각내용이 물자체는 아니다.
6. 직관의 의미: 정신성의 근원에로 되돌아가는 긴장된 노력에 의한 "정신에 의한 정신을 봄이 일차적이며, 2차적으로는 정신성에 참여한 한에서 물질적 사물에 대해서도 직관은 성립"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 존재는 경험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다. 이 경험은 투시 혹은 접촉이라 불리며, 물적작용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는 외적 지각이라 하고, 정신과 관련되어 있을때는 직관이라 불린다." . . . 결국 베르그송에 있어 직관은 근원적으로 두 가지가 있고 이 직관 모두는 모든 이론에 선재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 . . . 특히 순수지각은 이미 우리의 존재의 물적기초(신체)를 반영하고 있어 그것은 물자체일수 없으며, 정신에 대한 순수직관도 물질을 극복하는 정신의 고양에 따라 그 이질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가 이 양 직관의 내용이나 관계를 보다 실증적이고 구체적으로 검증하려면 이 양자가 관계맺고 있는 신체나 행동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메를로 퐁띠(Merleau Ponty)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7. 베르그송의 동적 실재론에 의한 지각론 = 지각을 인식을 기준으로 하여 보지 않고 우리의 신체가 개입된 행위를 기준으로 하여 설명된 것 . . . 따라서 표상론이 안고있는 이론적인 난점들을 상당히 극복하는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지각론이다 => 표상론의 난점중 하나; 우리가 외부실재를 지각하는 것은 우리의 두뇌 안이라고 하는 것 => 이 난점을 극복하기위해, 베르그송은 우리의 의식이 이미 세계에 있고(e^tre au monde), 지각은 이미 우주적이어야 한다는 순수지각적 측면을 연속된 물질상을 토대로 설명; 베르그송에게 지각은 신체의 매개에 의한 행위적 관점에서 설명된 것. 따라서 그가 지각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선정한 상(image)은 신체가 반영된 것이므로, 그의 순수지각이 인식론적으로 논해지려면 신체적인 반영이 저 물질이미지에서 제거되지 않으면 안된다 => 두 가지의 길: (1) 물질 이미지에 대해 "행위하기 위해서 보지"않고 "보기 위해서 보는" 그의 직관론의 입장을 따르는 것. (2) 물질 이미지에서 신체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 신체의 행위 구조를 더 분석함으로써 반성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는 것. 8. 베르그송은 그의 직관의 이론을 통하여 물질이 운동이나 진동이며, 우리의 감각에 포착되는 질은 이들의 압축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말함 => 그러나 베르그송의 물질적 직관이 운동이나 진동으로 포착되는가? 혹시 운동이나 진동과 감각의 질 사이에 논리적 유추나 실증과학적 실험의 도움을 받지 않았나? => 이미지만을 가지고 논의하는 베르그송의 지각론을 보면, 우리의 정신이 이미지에 의해 설명되거나 말해질 수 있는 성질이라는 점이다. 즉 의식의 현상은 훗설(Edmund Husserl) 현상학에서 말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서 만나는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상도 그림도 아닌, 의식의 지향 작용일 뿐이라는 것 => 베르그송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표상론자들이 말하듯 우리의 신체 안에 혹은 두뇌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신체를 통해 신체 안에는 물론 신체 밖에도 있으며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 <<즉, 메카니즘이나 종합적 활동의 효과>> 말하자면 의식은 이미지와는 범주가 다르다. 그러나 베르그송에 따르면 정신이라는 존재가 그 기능을 현실화하는 것이 반드시 신체를 통해서이므로, 정신이 어디에 있는냐고 물으면, 그것은 신체적 기능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신체와 결합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기능인 의식은 신체 안에도 있고, 신체가 다른 물체들과 상호 연속되어 작용, 반작용하므로 신체 밖에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이미 세계에 있다. 따라서 그의 의식개념 속에서 현상학처럼 의식의 지향성 개념이 이미 내포된다. 비록 존재론적인 의미가 포함되어있긴 하지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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