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재성, 잠재론, 잠재적 실재란 무엇인가?
들뢰즈의 시간론에서 잠재적 실재란 우리의 현재의 지각이 놓쳐버렸지만 여전히 우리 자신 안에 실재하고 있는 ‘과거 일반’이다. 그것은 의식화되지 않았고 현실화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드러나지 않았기에 잠재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떠한 ‘실재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겉으로 드러난 표정이나 행동 혹은 외형 이면에 사람의 감정이나 기억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잠재적으로만 내재하고, 사물의 겉모습 이면에 우리 눈에는 지각되지 않는 그것의 질료적 실태(물체를 이루고 있는 분자, 원자들의 운동과 진동 같은)가 엄연히 잠재적 토대로서 실재하듯이 말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은 이 모든 잠재적 실재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들뢰즈는 이것이 프로이트식의 심리적 무의식과는 다른 존재론적 무의식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현실성이란 그 잠재적 실재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결과이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나 지각 역시 그 잠재적인 것들을 토대로 한다.
1. 『들뢰즈의 잠재론』출간의 의의
이 책은 들뢰즈의 예술론을 베르그송주의의 관점에서 조망한 잠재성 개념에 대한 국내 최초의 본격 연구서로, 문학박사이자 문예비평가인 저자 조성훈은 들뢰즈의 철학을 빌어 예술에 관한 논의를 철학적·윤리적·정치적 관점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들뢰즈가 베르그송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잠재성론을 통해 현실적인 것을 넘어 잠재적인 것으로 우리를 도약하게 하는 예술의 힘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 책의 1부에서 저자는 베르그송에 대한 들뢰즈의 사유를 살펴보면서 들뢰즈의 잠재성론의 배아와 기원은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프루스트, 멜빌, 마조흐와 사드 등의 문학작품과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계열의 영화 이미지들을 통해 들뢰즈가 그의 예술론에서 어떻게 베르그송주의를 구체적으로 실습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들뢰즈 철학의 핵심인 잠재성 개념에 대한 친철한 설명과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풍부한 예제, 그리고 문학작품, 영화이미지들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 속에서 독자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잠재적인 것, 즉 삶의 존재론적 층위를 말하고자 했던 들뢰즈의 철학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자 조성훈은 본인이 수개월에 걸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의 결과물들을 이 책에 반영하였다.
2. 『들뢰즈의 잠재론』상세한 소개
삶은 의미와 관계의 창조이다! 차이는 언제나 긍정을 함축한다!
들뢰즈의 자연은 단일한 일자(一者)의 의지나 미리 규정된 질서가 아니며, 이미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관계의 집합, 본성적으로 다른 이질적 체계들과 그 관계의 혼성적인 자연이고 관계들의 거칠고도 강렬한 아상블라주(assemblage)이다. 그렇다면 자연 안의 모든 존재자들이 자신 안의 고유함으로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또한 미리 규정된 의미가 없던 자연이 어떻게 하나 혹은 다수의 의미를 가지게 될까? 그에 대한 해답으로써 들 뢰즈에게 삶은. 미리 주어진 질서의 모방이나 발견이 아니라 의미와 관계의 창조이다.
잠재성이란 무엇인가? 잠재적 실재, 존재의 본질은 항상 시간의 최종적 결과 속에서만 드러난다!
들뢰즈는 자연의 두 체계를 구분하고 논증한다. 공간적으로 혹은 대상적 관계로 규정되는 두 번째 자연으로서의 객관적인 사물의 체계가 있고, 객관적 상태가 형성되기 이전에 실재하는 자연의 첫 번째 체계가 있다. 이 자연의 첫 번째 체계, 존재론적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것이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이자, 베르그송의 지속, 스토아학파의 크로노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그리고 들뢰즈에게 있어서 잠재적 실재이다. 들뢰즈는 본질적인 것은 잠재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최종적 결과 속에서만 드러난다고 말한다. 『들뢰즈의 잠재론』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 테마인 잠재성 개념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들뢰즈 철학에 대한 발본적인 이해로 독자를 인도한다.
예술은 차이와 긍정, 관계의 창조를 육화하며, 우리를 잠재적 실재로 도약하게 한다!
『들뢰즈의 잠재론』에서 예술은 차이와 긍정 그리고 관계의 창조를 육화하는 모델로 상정되며, 들뢰즈의 이론은 예술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된다. 베르그송의 지속의 리듬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경험적 자료로서 음악이나 미술을 자주 논의했다.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차이, 긍정, 공명, 관계의 창조를 구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들은 다름 아닌 프루스트이며, 카프카이며, 마조흐(Masoch)이며, 휘트먼(Walt Whitman), 로렌스(D. H. Lawrence)와 같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다. 월트 휘트먼
환상에 빼앗긴 우리의 시간, 나아가 존재의 참된 시간을 되찾는 문제에서, 예술이 윤리적․정치적 테마들과 엮일 수 있는 결절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들뢰즈의 잠재론』의 가정이다. 왜냐하면 잠재적인 것을 육화할 수 있는 것, 즉 그 고유한 의미에서 존재를 시간 속에서 사유하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예술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대상적 관계를 넘어 우리를 지속으로, 잠재적 실재로 도약하게 한다. 예술은 우리를 절대적 차이로 이끌면서, 그 차이를 훼손하지 않고도 우리를 공명하게 하고, 나아가 하나의 시간 속에서 공존하는 길을 연다. 그리하여 차이와 긍정의 테마를 관계의 창조라는 테마들로 이끈다.
3. 『들뢰즈의 잠재론』 구성적 특징
이 책은 전체적으로 두 수준으로 나뉜다.
들뢰즈의 대부분의 저작에는 베르그송의 사유가 마치 배아처럼 응축되어 모든 주제에 걸쳐 기저를 이룬다. 따라서 1부에서는 그의 저서인 『베르그송주의』를 그 논의에 따라 파고들어 읽으며, 들뢰즈가 베르그송을 어떻게 사유하는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들뢰즈의 베르그송 해석은 크게 “방법으로서의 직관”, “직관의 대상으로서의 지속”, 그리고 “삶의 실천”이라는 형식으로 요약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시 여러 주제들로 세분화 되어, 지성이 사로잡힌 환상과 싸우는 직관의 비판기능, 실재의 마디를 찾아 본성상의 차이를 나누는 직관의 나눔, 절대의 두 측면인 공간과 지속의 긍정, 동일한 이상과 잠재적 실재로의 수렴, 다양성의 공존과 회상, 다원론과 일원론의 독특한 관계, 비개인적인 일원론의 시간, 삶의 창조로서의 잠재적 회상의 현실화 등으로 나뉜다.
두 번째 수준에서는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가 다른 여러 작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분화되는 양상을 다룬다.
이 책은 다수의 반복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수준의 이론적 배아가 두 번째 수준에서는 일종의 발산의 형태로 여러 작품들과 관계하면서 다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묘하는 것은 자연의 두 체계의 운동처럼 엮이고 있는 이 두 수준의 응축, 발산, 분화, 구체화이다.
5. 『들뢰즈의 잠재론』 목차
서문
1부 잠재적 실재
1장 실재와 직관
직관의 비판능력
직관과 실재: 직관에 관한 잘못된 오해
정도상의 차이와 본성상의 차이: 운동의 참된 이해와 잘못된 이해
근본적 환상에 대하여
부정과 일반관념에 대한 비판: 퇴행과 무능력
다양성 개념에 의한 변증법 비판
인간적 조건 하에서의 진리란 그 자체 기만적인 것이다
2장 차이와 나눔
주관적 계열과 객관적 계열로의 나눔
복합물인 운동의 나눔
나눔의 방법은 추상이 아니라 경험의 조건을 밝히는 것이다
3장 다양성의 공존
현재와 과거의 본성적 차이
잘못된 시간개념: 과거와 현재의 혼동
심리학과의 단절로서의 회상
회상의 현실화
시간의 의미: 삶의 창조
4장 하나이며 다수인 잠재적 실재
다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 개의 텍스트
상대성 이론에 대한 비판: 시간과 공간의 혼동
직관적 흐름의 동시성, 절대적이고 단일한 시간
다원적·발생적 일원론: 이원론과 일원론의 조화
5장 삶의 창조와 자유
잠재성과 진화
잠재적 실재와 자유
삶의 창조
2부 잠재 예술론
1장 내부의 역설: 친구조차 불신하는 저녁시간
2장 증후학적 큐비즘: 망치와 모루
사도-마조히즘, 하나의 복합물
논증과 변증법
외설과 상상
이상화 과정의 차이
아버지와 어머니
심미적 긴장과 유물론적 팽창
법과 제도
아이러니와 유머
자아와 초자아
3장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상: 빛과 사물의 피부
4장 시간의 참된 이미지: 담장에 기대어 서 있는 자전거
예술의 힘: 시간의 직접적 현시 혹은 해방
행동성의 균열과 잉여실재
풍경, 관조 이미지
정물, 지속 이미지
잠재미학: 어떻게 진부함에서 벗어나 투시자의 잠재적 역량을 가질 것인가?
5장 예술과 본질: 고양이의 미소
6장 공명과 열린 전체: 시멘트를 바르지 않은 돌담
세계는 부서져 파편이 되었다
파편에 대한 두 가지 상반적 태도: 그리스적 태도와 프루스트적 태도
열린 통과 막힌 관의 복합-이미지
횡단, 전체성의 새로운 모델
파편과 공명, 그리고 본질을 생산하는 기계
아상블라주와 열린 전체
결론:잠재, 예술, 그리고 삶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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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네요.
계획보다 좀 늦게 나왔습니다.
주변 분들에게 홍보도 좀 . . .^^
이게 단순히 문화적 생산물이 아니라, 출판사의 사업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군요. . .
이제야 겨우 읽었습니다 ^^핑계 같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슨 소설 책도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읽어야하는데 그 럴 시간이 없었어요.
읽으면서 내가 사유의 습관에서 참 멀리도 와있구나 라는 뼈아픔과 그리고 행복감이 있었습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제 블로그에도 소개를 좀 했습니다.
1부의 꼼꼼한 철학적 사유에 자주 버벅대야했고,
2부에서는 술술 읽히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몇몇 이미 좀 아득해진 머리 속의 질문들이 떠올랐고 그에 대한 설명 또한 읽을 수 가 있었습니다.이것은 아주 큰 소득입니다.
뼈아팠던 이유는 내가 뭔가 사유하거나 예술적인 창조를 생각할 입장에서 많이 먼 조건에 와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제게 어떤 개인적인 자각의 기회를 주었고 (생활, 습관, 환경과 사유와의 관계에 대한 )
훈님께
이러한 저술을 남기신 역량과 인내심에 존경을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훈님 책표지를 참 잘고르셨어요.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납니다. 롤랑 바르트가 어딘가 썼던 말인데
티브이로 본 로자 룩셈브룩의 눈이 아름다워 그녀를 읽기 시작했다는...^^
들뢰즈가 참 다정하게 느껴진단 말이죠. 저 표지를 보면. ^^
관조하면서도 깊은 이해력이 보이는 얼굴...
더워서 잠시 수다 떨고 갑니다.
^^. . . 책표지는 제가 고른 것이 아니랍니다.
제가 쓴 책인데도, 제 사진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네요^^
아니 오히려 제 사진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 패러독스처럼 보이네요.
처음엔 제가 제목에 걸맞게 안개 이미지를 비공식적으로 제안했었는데, 전달이 안 되었는지, 반영이 안 되었습니다.
들뢰즈의 Bergsonism의 영어판 책표지(유명한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인데)와 유사한 것을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 사진을 넣은 것이 더 잘한 것 같네요.
어줍잖게 그림을 넣느니, 사진을 넣은 것이 보다 무게감이 있어 보입니다.
책이 나온 후에, 저는 책의 판형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이 좀 상했었습니다.
약간 정사각형으로,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판형 같아 보였거든요.
지금도 판형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출판사측에 말은 안 했지만)
판형을 봐도 그렇고, 활자, 편집 등을 봐도 그렇고,
아마 인쇄비 문제 때문이었는지, 대체적으로 페이지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사진은 아마도 그래픽으로 편집을 한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저 얼굴 사진은 거울 속에 무한하게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사진 같아 보이는데,
거울은 빼고 다른 사진을 배경으로 넣은 것 같습니다.^^
위에 올려주신 Anish Kapoor . . . 어떤 점에서 들뢰즈와 어울린다는 말씀이신지요?
ㅎ, 그러고 보니 책을 쓰신 분은 훈님인데...ㅎㅎ
출판사는 들뢰즈의 이름, 들뢰즈의 얼굴을 더 힘입고 싶었겠죠. 흔히들 그러듯이 관성에 따른 것이었겠지만요.
그러므로 -ㅎㅎ 이런 말씀드려도 될진 모르지만 이젠 타인의 것에 대한 연구를 멈추시고 자신의 창작물을 한권 만드시는 건 어떻세요?
-이 책이 창작성이 없다는 얘기가 물론 아니구요. 다만 이런저런 사상들을 녹인 그런 책이 훈님에게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요.-
게다가 마음에 딱 떨어지는 걸 만들려 하셨으면 간섭을 좀 하셨어야겠죠.^^
유니크한 디자인이나 판형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시중의 사정을 봐서는 무난한 편이라고 여겨져요.
편집은 좀 더 여유있게 들어갔으면 좋긴 했겠네요. 말씀 듣고 보니.
전 들뢰즈의 저 사진 좋아보여요.약간 깐돌이^^ 같이 들여다보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은 그 때문에 좀 더 가까이 느껴져요 ^^)
역시 이해력있어 보이는 풍모구요.
저 위 작품은...별 대단한 이유 같은 건 없구요. 그냥 바로 떠올랐어요.무책임하죠 ?^^
아니쉬 카프는 글쎄요. 뭐랄까...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긴 그렇고 저 작품은 그의 대형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이전 것으로(화집으로만 봤어요.) 위의 저 작품은 말하자면 그 전체 작업의 부분인 셈인데...
전체적으로 인간의 잠재적인 그 무엇들을 건드리는데 탁월해 보이더군요. 표현 방식이 아주 좋게 다가왔었어요. 제겐. 보는 자리에서 바로 끌렸어요.
정형화되지 않았으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많은 함의를 느끼게 할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여겨졌어요
그러므로 ... 말을 만든다면...잠재적인 것의 형상화에 능한 작가로 보이구요. 감각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붙잡아낸다고 할까요.에세셜하되 경직되어있지않고.
무엇보다 그 서술 방식에서 들뢰즈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뭐 들뢰즈에 일가견이 있는 것이 아니니 훈님의 글에서 거듭되는 '잠재론'이란 말과 더불어서요.
그 화집의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읽지 않았던 생각이나요. 느낌이 참 좋았었거든요.
설명을 읽다보면 어떤 경우 실은 실제 작품보다 작가의 의도가 형편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작품의 해설이 유난해서 기분 망치는 경우도 있구요.
반대로 작가 의도보다 형편없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요.
-이런 식의 무성의한 설명 죄송합니다 ^^ 공부 안하다보니 티가 팍팍나네요.얼마나 책을 안보면 표현할 용어가 우선 딸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책 좀 읽고 여기에 아니쉬 카프의 조금이라도 말을 해 보겠습니다.-
책 출간하셧군요^^
축하드립니다.
얼른 한 권 구입해야겠네요.
들뤼즈의 매력을 집대성하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