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창,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유리창은 한 번도 투명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유리창은 투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니 투명한 유리창을 보고 싶어,
유리창을 닦기 위해 물걸레, 화학약품, 휴지, . . . 등을 사용해 보았지만, 오히려 처음보다도 더 그 투명이 사라지고,
내 손이 가는대로 자국이 생기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려,
투명을 향한 내 노력은 그 자체가 투명을 소거시키는 과정이 아닌가?
부분 부분 여기 저기 닦다보니, 너무 질서가 없이 지저분한 것 같아, 조직적인 걸레질이 필요해 보인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단숨에, 한 번에 한 번씩만, 가지런히 힘을 주어 밀어본다.
오른쪽으로 쏜살같이 내닫는 고속도로 흡사한 보기흉한 줄이 그것도 굴곡이 진 채로 나 버린다.
줄을 지우기 위해 이번엔 꼭대기에서 바닥끝으로 밀어버린다. 좌우 고속도로는 사라지고, 상하 고속도로만 다시 또렷히 생겨버린다.
습기와 물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수분을 닦기 위해 마른 수건으로 자국을 지워보지만, 마른수건의 먼지들이 하나둘씩 달라붙더니,
이제는 겉잡을 수 없이 많은 먼지와 점들이 시야를 가려 도로 지저분해진다.
국민학교때 배운 방법으로, 신문지가 잘 닦인다고, 기름냄새 나는 신문지를 뜯어 닦는다.
창이 이미 말라버린터라 그 조차도 잘 닦이지 않았다.
닦아내는 것으로는 결코 투명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이 엄습한다.
이것이 불자(佛者)들이 깨달은 역설일까?
투명한 유리란,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에만 잠깐,
어쩌면 그 공허한 순간에만, 나타났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에테르라고 할 수도 없을 뭐 그런 . . .
어쩌면 이 모호하고도 혼란스러운 투명함 자체가 이미 혼탁이 아닐까?
투명이 만들어지고 난 직후부터 먼지가 끼고, 시간이 달라붙어 무엇인가가 덧붙여져,
무시무시한 독식기계 크로노스(Chronos)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을테니,
우리는 결코 투명 앞에 설 수가 없다.
그러니 청전화(靑田畵)의 그 볼록한 광경에 펼쳐진 전원처럼,
돌아갈 수도, 만져볼 수도 없이, 단지, 손재주 좋은 환쟁이의 도움으로 잠깐 떠올렸다가 훅 하고 꺼져버리는,
영원한 마음 속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어쩌다가 머물게 된 한낱 곡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