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를 하나의 계급으로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회적 생산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편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등록이 불가능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계급의 의미를 좀 광범위하게 잡는다면, 수용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백수는 물건이나 지식이나 인간의 삶이 필요로 하는 그 어떤 사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 체계의 파괴를 생산한다.
생산적 관점에서 백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일반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백수는 파괴와 방탕을 생산하는 존재이다!
죽음이 삶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삶의 근원적 생산이듯이, 백수는 생산을 파괴하고, 더디게 하고, 방해하고, 교란시키고, 맥빠지게 함으로써,
생산의 편제를 다른 편제 형식으로 바꿀 여지를 마련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수는 편제들 간의 이행적 계급 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라고 하는 메타주체보다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계급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 온다.
노동자는 생산체계 내부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산체계를 더 공고하게 하는 찰과상 혹은 면역기능을 제공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발생해서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휴식과 면역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 감기 바이러스처럼,
이미 정보와 지식을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충분히 등록한 노동자는 자본의 불주사 또는 유산균이기 때문이다.
다만, 백수가 염려되는 것은, 그들은 너무 그늘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백수나 거의 진배없는 제겐 마음에 닿는 글이네요.^^
저의 금붕어식 기억력으로 희미하게 Bataille이 떠오르기도 합니다..파괴와 방탕이라니까요.
지금이 생산사회인지 소비사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노동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느정도의 맥빠지는 경험을 줄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자발적인 백수들이 많고 백수들이 백수로서 자기 표현에 당당하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 물론 생존이 걸린 노동에 대해선 좀 다른 진지한 자세로 대해야만 하겠지만요.
-백수라니까 선뜻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생각이 납니다.- 싸구려 커피와 눅눅한 비닐 장판이라니 보통 백수들이야 어찌 그늘에 있고 싶지 않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