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증류수만 마시고는 살 수 없고 먼지 없는 세상에서 죽게 되어 있듯이
모든 것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듯 합니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 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순수하다는 것은
그 만큼 세상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아마 그 비숫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글의 맥락과는 다른 것입니다만.
길어서 몇번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피이터 블레이크의 글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근대 건축의 순수성에 대한 환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제를 집중해서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순수성의 환상
- 피이터 블레이크
“장식과 죄악” (Ornament und Verbreche)은 비엔나의 건축가 아돌프 로오스가 1910년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이다. 그 의미는 극히 명백하게, 장식은 죄악이었고 여전히 죄악 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엄격한 미국의 청교도들 조차도 약간 당황 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검소함이 미덕인 줄 알아왔다.-그런데 장식이 죄악이라니? 그만 두시지, 로오스씨_ 아마 어줍쟎은 말이거나 농담이겠지요. 그러나 죄악이라니? 그리고 허구많은 사람 중에 비엔나 사람이 그런 단정을 내리다니? 그것은 허풍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허풍이 아니었다. 로오스가 그의 선언을 발표한 이래 근대 건축에 있어서 장식은 죄악일 뿐 아니라, 그 반대적 명제- 장식 없는 청교도적 단순성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는 명제-는 금세기에 가장 현저한 근대 건축운동의 지도원리의 하나였다.
장식없는 청교도적 단순성은 물론 매우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브랑쿠지의 “물고기”란 대리석 조각품은 필적할 것이 거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성적(性的)매력도 역시 그러한) 물체이며, 사람들은 그 긴 석편의 완벽성에 멀리에라도 미치는 20세기의 조각작품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느낀다.
그러나 브랑쿠지의 ‘물고기’는 뉴욕 근대미술관의, 공기조화 되고 , 습도조절 되고, 먼지막이 되고, 철저히 감시된 전시실 속에 놓여 있다. 그것은 가장 철저히 소독된 금세기의 대전시장의 하나인 비현실 세계에 놓여 있다. 브랑쿠지는 자기의 조각품들을 베헝겊에 싸서 파리의 자기 스튜디오에 두기를 잘하였는데, 방문객에게 설명하기를 “남들이 보거나 만지면 그것들은 신경질적으로 된다”고 하였다. 근대미술관에서 그 ‘물고기’는 브란쿠시가 베헝겊으로 싸 둘 때와 거의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아돌프 로오스가 논하고 크게 공헌했던 건축은 현실 세계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현실세계는 장식 없는 청교도적 단순성을 어느 정도 경멸로써 대한다. 현실세계는 그것을 금가게 하고, 얼룩지게 하고, 녹쓸게 하고, 뒤틀리게 하고, 쪼개고 썩게 한다. 얼음, 눈, 우박, 비, 끓는 햇빛, 매연, 아니면 오염된 공기로 된 현실 세계는 장식 없는 청교도적 단순성을 존경하는 자는 아니다.
실제로 부랑쿠지의 ‘물고기’가 다소의 시간을 두고 현실세계에 노출되어 있었다면 대리석 가루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현실세계의 생활의 실상은 근대 건축운동의 가장 뛰어난 맣은 건물에 엄청난 피해를 입혀왔다. 국제주의 양식의 가장 초기의 건물들은 불투명, 반투명 또는 투명한 재료로 된, 일견 완전하고 일견 기계제품인 듯한 슬래브들로 건설되었고, 그 슬래브들은 모두 정확하고 면도날 같은 선에 따라 접합되고, 공업화된 건물에 대한 차겁고 합리적인 방법을 나타내도록 정해졌다.
그 건물들은 특히 도면과 사진에서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 사진은 준공식 테이프를 끊자마자 찍고, 슬래브의 깍아지른 듯하고 완전히 평탄하고 면도날 같은 정확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적당히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대건축운동의 위대한 기념비적 건물들은 보통 스터코를 덮은 테라코타 블록으로 지어졌다. 스터코는 적어도 오백 년 동안 일반적으로 사용해온 재료이고, 테라코타는 태고적부터 더 일반적으로 사용해 온 재료이다. 1932년에 헨리 러셀 히치코크와 필립 존슨은 그들의 영향력 있는 책”국제주의 양식( The International Style)을 출판했을 때 이렇게 지적하였다.”미적 고려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대) 건축가 조차도 벽돌에 스코터를 바른다… (제물 치장의) 벽돌의 사용은 근대 양식의 기본적인 성격과는 상반되는 화려미를 주기 쉽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무엇인가? 많은 다른 이론가나 실천가와 마찬가지로 히치콕크와 존슨은 새로운 재료에 기대를 걸고 “스터코 같으면서도 탄력성이 있고 색채 범위가 넓은 재료가 이상적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재료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근대건축운동은 곤란하게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근대 건축 운동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던, 기계제작에 의한 듯한 외형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대량생산된 건물부품처럼 되어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바로 그 근대건축운동의 위대한 기념비적 건물의, 말끔한 가장자리의 공업제품식 창과 문짝은 가구사나 철공에 의하여 (‘정지”이란 명목으로)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졌다. 뉴욕 근대 미술관과 그밖의 미술관이 (역시 그 정직성 까닭에) 당연히 찬양했던 기계예술의 아름다운 제품도 역시 보석 세공사나 그 밖의 근래의 중세적 工匠에 의하여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졌다.
그렇게 꾸며진 결과는 –적어도 사진에서는 –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에서 추구하였던 것 같은 공업적 형식의 새로운 세계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새로운 제품의 원형은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완전히 이치에 맞은 것이다.
그러나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의 근저에 깔린 전제-수직성, 평활성, 무장식의 단순성이란 전제-는 오늘날 실현 불가능한 꿈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현실의 옥외 세계에서 건립해야 한다는 사실-기후와 유지보수와 같은 일상적인 문제- 이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의 완전무결한 건축의 이상을 사실상 성취할 수 없게 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